SILENT REVOLUTIONIST

SKM 건축사사무소 대표인 건축가 민성진. 그는 생각이 깊고 차분했다. 오랜 연륜에서 비롯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건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그의 작업에는 구조적 형태 그 이상의 진보와 혁신 그리고 지속 가능한 비전이 숨어 있다.

 


 

그의 이름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된 건 2006년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가 “국내 리조트 역사를 다시 썼다”는 찬사를 받은 이후다. 기존의 국내 리조트에선 볼 수 없던,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유선형의 낮은 건물. 파격적이었다. 그 후 10여 년간 개인 주택과 공용 주택의 장점을 아우른 파주 북시티 헤르만하우스, 공유 개념의 별장인 아난티 펜트하우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recast concrete) 공법을 적용한 중고차 매매 단지 엠파크 허브 등 일반적 개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SNS에서 가장 많은 태그가 달리는 장소도 그가 디자인한 부산의 아난티 코브다. 이 고급스럽고 안락한 리조트를 직접 경험해본 이들의 자발적인 업로드 덕분에 부산은 지금 가장 핫한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1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7만 5837m2의 드넓은 부지에 힐튼 부산과 회원제로 운영하는 아난티 펜트하우스 등이 어우러진 아난티 코브.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흐르고 뒤로는 완만한 산의 능선이 이어지는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건축적 외형, 다양한 동선에서 탁월한 조망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한 구조, 넉넉한 테라스 등이 이 장소 자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곳에는 여행을 통해 설렘과 에너지, 휴식과 영감을 선사하고 싶다는 아난티 이만규 대표의 아이디어와 기획력, 건축물을 통해 그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구현해낸 건축가 민성진의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건축물을 설계하고 디자인할 때마다 항상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할지 조사하고 연구해요. 처음부터 형태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그곳에서 이루어질 행위와 기능, 분위기 등에 집중해 건축적 관점으로 풀어내다 보면 의도한 것보다 멋있는 디자인이 나올 때가 많아요. 그걸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형태로 완성해야 오랫동안 봐도 질리지 않는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지닌 건축적 자산은 어릴 적부터 고향인 부산을 포함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한 독특한 경험이다. 초등학생 때 부산에서 서울로, 중학생 때 서울에서 미국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각각의 환경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문화를 두루 경험했다.
“미국에서도 동부와 서부는 정말 달라요. 덕분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 재학 시절엔 자유롭고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와 낙천적으로 인생을 즐기는 법을, 하버드 대학원 시절에는 늘 차분하고 부지런하게 준비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문화가 있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존중해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체득했죠.”
그런 그가 건축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생 때다. LA 북쪽의 작은 도시 글렌데일에서 자주 들르던 도서관을 보고 난생처음 ‘멋진 건축물’에 눈을 뜨게 된 것. 카네기 재단의 지원으로 웰턴 베킷(Welton Becket, 1902~1969년)이라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그 도서관을 통해 잘 지은 공공 건축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깨닫게 되었다. 부산 아난티 코브 설계 당시 산책로와 레스토랑, 다양한 숍이 들어간 아난티 타운이라는 퍼블릭 공간을 만들어 펜트하우스 회원이 아닌 일반 시민과 관광객 또한 자유롭게 와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때의 인상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세계 곳곳의 서로 다른 문화라 할지라도 보편적으로 통하는 공통점이 있어요. 멋진 공간에 대한 욕구죠. 나만의 공간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 욕구, 그곳에서 느끼는 안도감과 진취적인 삶에 대한 의욕…. 바로 공간이 주는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더 좋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아낸 이러한 철학은 그가 느끼는 진중한 사명감이기도 하다.

 

그의 건축물을 보면, 전체적인 형태뿐 아니라 외관과 내부에 사용한 소재도 과감하고 실험적이다. 아난티와 아난티 남해(구 힐튼 남해)처럼 티타늄 소재로 미래적 느낌을 부여하거나 흔히 외벽 구조에 쓰는 차갑고 거친 느낌의 H빔 소재를 실내에 사용하는 등, 다루기 힘든 소재를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 더해 세련된 디테일과 생동감 넘치는 조합을 구현해낸다. “아난티의 인테리어는 흔히 생각하는 고급 인테리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롭게 재해석해보자는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어요. 전형적인 고급 실크 벽지나 샹들리에가 아니라 거친 느낌의 인더스트리얼 체어나 조명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럭셔리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가 시간 날 때마다 취미로 만드는 말 오브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폐차 시 버려지는 부품이 그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조형물로 재탄생한다. “자동차도 좋아하고, 기계 다루는 일에 워낙 관심이 많아요. 제 기능을 다한 자동차 부품을 막연히 모으다 이만큼 견고하고 구조적인 형태도 없다는 생각을 했죠. 자동차를 발명하기 전 주요 교통수단은 말이었잖아요. 자동차 부품으로 말을 만들면 연결성도 있고 재미있겠다 싶었죠. 벌써 10년 넘게 만들어왔는데, 2014년에는 이태원의 아마도갤러리에서 전시도 했어요. 그 재료의 특성을 살려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흥미로운 도전이에요.”
건축도 마찬가지다. 그는 건축이 그 땅의 환경이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반영해 구현해내는지에 따라 문화를 풍요롭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젊은 시절보다 훨씬 노련해진 50대에 와서야 건축에 대한 취향과 소신이 분명해졌다고 고백했다. 좋은 장소에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 건축물이 그 도시를 이루는 하나의 레이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곳에서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반영하는 것. “건축은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원동력입니다. 건축가에게도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은 건축물을 통해 도시의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와 문화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이러한 철학은 삼성동에 자리한 SKM 사옥에도 잘 드러나 있다. 높은 오피스 빌딩 숲이 아닌 주택가 골목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낮은 건물로 지은 사옥은 높은 층고와 정돈되어 있으면서 쾌적한 분위기, 철망으로 차가운 담벼락을 대신해 햇살과 바람이 통하고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정원이 인상적이다.
이 사옥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리프레시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자신의 집 담을 허물고 정원을 만드는 것, 2015년에 완공한 청담동의 준오 아카데미 건물 덕분에 주변 경관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 아난티 코브가 부산이라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것. 민성진 대표는 이미 차근차근, 그러나 과감하고 진보적인 방식으로 그 소신을 실천하고 있다. 마치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듯이 말이다.

 

COPY : Lee Jungjoo PHOTO : Lee Jeo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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