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ING STORYTELLER

공기 속에 젖어들고 마음에 안개비처럼 녹아내리는 목소리의 주인공, 로라 피지를 만났다. 지난 9월 대구에서 열린 아홉 번째 ‘아우디 라운지 by 블루노트’ 공연은 그녀의 목소리로 온통 감미롭게 채워졌다.

 


 

질주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차가 있고, 편안하고 아늑한 차가 있다. 전자가 우악스럽게 ‘당신은 나한테 몸을 맡기고 있지’라 외친다면, 후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어느새 목적지에 닿아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있는 힘껏 비트와 사운드를 과시하며 카리스마를 뽐내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듣는 사람의 주변에 공기처럼 녹아드는 음악이 있다. 아직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던 9월 12일 대구, 해는 청명했고 하늘은 푸르렀다. 그날 저녁, 대구 한쪽에는 안개비가 내렸다. 음악의 안개비가 내렸다. 무대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의 얇은 옷을 목소리로 적신 주인공은 로라 피지(Laura Fygi)였다. 1990년대 후반, 심은하와 이성재가 청춘의 풋풋함을 뽐낸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을 기억하는가. 로라 피지는 이 작품에 삽입된 ‘Let there be love’로 단숨에 심야 FM의 단골손님이 됐다.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 후에도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 등 광고음악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종종 들리곤 했다. 이름은 몰라도 목소리는 누구나 아는, 그리하여 목소리가 곧 지문이 된 뮤지션의 반열에 올랐다. 녹음된 목소리로, 그리고 수차례 내한 공연으로 팬을 만들고 그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9월 12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로라 피지의 공연은 다시 한번 그 자신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기타, 색소폰, 트럼펫까지 총 6명의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른 그녀가 관객을 사로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5초 안에 제로백의 스피드를 뽑아내면서도 탑승자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차와 같았다. 1시간 남짓, 로라 피지는 재즈와 삼바, 보사노바, 포크 등 그동안 불러온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그 어떤 장르도 어색하지 않았다. 자신을 장르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각 장르의 음악을 자신에게 맞추는, 즉 어떤 노래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최근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 의 타이틀곡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샹송 ‘La Vie en Rose’에서는 원곡을 부른 에디트 피아프가 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명곡 ‘Corcovado’를 부를 때도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에 전혀 지지 않았다. 주요 레퍼토리인 모든 리메이크곡이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리지널곡을 작곡한 이들이 원곡의 가수가 아닌 로라 피지를 위해 그 노래를 만든 것 같았다. 원곡과는 다른,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내는 능력 덕분일까. 휘트니 휴스턴의 의뢰조차 거절한 프랑스의 유명 영화음악 작곡가 미셸 르그랑이 처음으로 로라 피지를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렸다.
공연이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또한 무대와 관객이 하나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도 로라 피지는 원숙했다. 자신의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을 위해 클릭을 유도하고, 함께 부를 수 있는 파트를 미리 알려주면서 관객이 주변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잘 차려입은 관객도 모든 격식을 내려놓고 기꺼이 그녀의 목소리에 온몸으로 녹아들었다. 우아한 흥이었다. 디너가 준비된,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공연을 그렇게 부드럽게 끌고 갈 수 있는 뮤지션은 그리 많지 않다.
밤 9시를 살짝 넘겨 공연이 끝난 후, 나는 일찍 빠져나와 관객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 누구도 밋밋하지 않았다. 들어갈 때의 기대감이 만족과 행복으로 완전히 치환된 듯 보였다. 확신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모두가 로라 피지의 음악을 들으며 밤의 도로를 달릴 거라고. 얼굴의 미소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그 밤의 드라이브는 평소보다 유달리 편안하고 아늑할 거라고. ‘Dream a Little Dream’, 작은 꿈을 꾸는 듯한 밤이 함께할 거라고.

 

 

Q.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한국 팬들만의 독특한 관람 분위기가 있다면?
언어는 물론 문화 전반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히트송이 몇 곡 있는데, 그걸 부르면 정말 열광적으로 호응해준다.

Q. 이번에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는 클래식부터 최신곡까지 선곡 영역이 넓다. 어떤 기준으로 선곡했나? 수록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인가?
유니버설뮤직에서 아시아를 포함해 세계인이 좋아하는 80곡을 제안했고, 에디트 피아프뿐 아니라 얼리샤 키스 등 신구 뮤지션에 상관없이 10곡을 다시 추렸다. 그 곡들을 나만의 스타일로 편곡해 불러 로라 피지의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La Vie en Rose’다. 영어로 불러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영어와 프랑스어로 부른 버전 모두 실려 있다. 어릴 적부터 에디트 피아프의 프랑스어 버전을 들으며 자랐고 여전히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Q. 유명한 곡을 대상으로 리메이크 작업을 많이 한다. 유명한 원곡을 다시 부르려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당신만의 작업 철학이나 방식이 있나?
곡의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스토리다. 그러니까 나는 그 곡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말하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거다. 단순히 원곡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잘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다.

Q. ‘La Vie en Rose’는 어떻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냈나?
어머니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어릴 적부터 오래된 샹송을 들으며 자랐다. 자주 듣고 따라 불렀으니 자연스럽게 그날의 기억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껏 다른 이들이 해온 편곡과는 다르다.

Q. 사회가 디지털화되면서 음악 산업과 소비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아날로그 시절의 뮤지션으로서 감회가 어떤가?
젊은이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내가 좀 더 일찍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30~40년 전에는 레코드 가게에 가서 직접 앨범을 고르고 사서 듣곤 하지 않았나. 그런 문화에서 이루어진 어떤 소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런 소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Q. 아우디 라운지는 진보적이며 혁신적이고 다이내믹한 아우디의 브랜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월드클래스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있다. 당신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나의 음악 스타일은 클래식한 하이클래스라고 생각한다. 아우디의 브랜드 가치와 잘 부합하는 것 같다.

 

COPY : Kim zakka PHOTO : Lee Jeong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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