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ZEN OF SAILING

아우디 AG의 디자인 수장 마르크 리히테에게 배는 특별한 존재다.
뱃사람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요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선상은 피난처이자 내실을 채워 미래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다.

 


 

가끔은 아주 사소한 일로 한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마르크 리히테(Marc Lichte)의 요트 돛대 꼭대기에 있는 풍속 감지기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다른 모든 요트는 풍속 감지기를 돛대에 바로 보이게 달거나 똑바로 앞을 향하도록 설치하지만, 내 풍속 감지기는 돛대의 위쪽으로 나 있는 선을 따라 달리는 대신 공기역학적으로 구부러져 앞쪽으로만 길게 늘어지길 바랐다. 그러면 감지기가 완벽하게 바람이 흐르는 방향으로 구부러지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내가 직접 설계한 감지기이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완벽한 장비다”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는 머리 위로 왼손 검지를 쭉 뻗으면서 오른손으로는 바람을 따르는 풍속 감지기의 완벽한 유선형 굴곡을 그려 보였다. 그리고 똑 부러지는 말투로 요트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요트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바우스러스터(bow thruster, 뱃머리를 빨리 돌릴 때 조종의 편의를 더하는 보조 장치)를 장착했다는 것이다. 종종 혼자 배를 몰고 나가는데, 선착장에 배를 대거나 바다로 나갈 때 유용한 장치다. 조선소에서 1mm짜리 이음매를 넣어주겠다고 했을 때 믿기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설치할 때 직접 가서 전 과정을 지켜봤다. 레가타(regatta, 보트 경주)에서는 당연히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를 제거한다.”

48세인 마르크 리히테의 페이스를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깃털보다 가벼운 티타널(titanal) 소재의 무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반짝이는 파란 눈이 차분해 보인다. 그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그는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스케줄이 빡빡한 탓에 그의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 독일 발트 해안의 작은 마리나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그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의 새로운 디자인 전략은 처음으로 양산차(최신 아우디 A8) 형태로 탄생했으며, 그가 그리는 자동차와 이동 수단의 미래 비전은 완전히 새로운 아우디 아이콘(AICO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맨발에 올리브색 치노 팬츠와 남색 울 스웨터를 캐주얼하게 입은 리히테는 XP-38 X-요트에서 우리를 맞았다. 유럽 잡지 <요트(Yacht)>는 이 요트에 대해 “매끈하고 빠른, 레가타에서 이 요트와 경쟁하는 모든 이의 심장에 두려움을 불어넣을 만한 퍼포먼스 크루저”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리히테의 요트는 여느 XP-38과는 또 다르다. 선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요한 부분을 카본으로 만들었다. 케이지, 용골, 돛대, 모든 부속물과 키, 그리고 새로 장착한 도일(Doyle) 돛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워낙 단단해서 그 어떤 것에도 꿈쩍하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며 “아주 약한 바람도 속도로 바뀌기 때문에 환상적인 세일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미 여섯 살에 옵티미스트(optimist)급 딩기 요트를 탄 열정적 요트 조종사인 그에게 퍼포먼스는 중요한 요소다. 그때부터 그는 정식으로 레가타 커리어를 쌓으며 레이저 요트에서 크루즈 딩기와 쿼터톤 클래스를 거쳤다. 리히테는 킬 위크(Kiel Week) 요트 레이스에서 세 차례 우승했으며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두 번이나 2등을 차지했다. 강력한 디자인 부서를 이끌어가는 부담감을 안고 있음에도 마르크 리히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세일링을 하려고 노력한다. 바이에리셔 요트 클럽(Bayerischer Yacht Club) 멤버인 그의 요트에는 클럽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그는 이 클럽의 수역인 슈테른베르크(Sternberg) 호수에서 독일 최고의 킬보트 세일링 스타 요하네스 폴가(Johannes Polgar)가 경주하던 좀 더 작은 요트나 레이저 요트를 한 손으로 타는 것도 좋아한다. 그는 “복근 운동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르크 리히테는 디자이너다. 그의 디자인 감성이 담긴 요트는 어디서든 한눈에 띌 수밖에 없다. 토노 커버(tonneau cover)부터 러더(rudder, 요트의 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맞춤으로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색상의 조화를 맞춰 하나의 틀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그의 말대로, 색상은 2개 톤으로 줄였으며 선체에는 RAL 셰이드를 적용했다. 여타 XP-38 요트와 달리 그의 선체는 하얗게 빛을 반사하지 않고 블랙 색상으로 반짝인다. 하지만 리히테는 블랙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니, 블랙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하다. 카본 블랙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어쨌든 선체는 상부 구조와 잘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서 리히테는 카본과 어울릴 만한 표준화되고 정교하게 정의된 RAL 셰이드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부두에서 그 색상을 1㎡의 플라스틱 시트에 칠한 후 각기 다른 시간대의 빛 아래 요트 앞에 대보며 배색 효과를 확인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도색을 허락했다. “이 다크 그레이 색상은 카본을 완벽하게 보완해 요트가 정말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리히테가 그의 요트에 기대한 것은 매우 심플하다. “퍼포먼스뿐 아니라 룩도 나무랄 데 없어야 한다. XP-38이야말로 그런 기대에 딱 맞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꿈을 꾸듯 항해하게 되는 이 요트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선을 갖추었다. 이건 나에게 중요한 요소다. 자동차 디자인과도 비슷하다. 아우디 카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요트에서도 선의 길이와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 마르크 리히테는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만족하지 않는 강박적 천재 디자이너다. 퍼포먼스와 미학, 그 모든 것을 그는 아우디의 언어로 표현해낸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기술과 디자인의 진보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세일링과 자동차 디자인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임하는 일이다. 독일 자우어란트(Sauerland) 지역에서 나고 자란 리히테는 학창 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뫼네(Mo:hne) 호수에서 보트를 탔다. 그림 그리는 것은 그가 지겨운 수업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는 “책 왼쪽에는 자동차를, 오른쪽에는 요트를 그렸다”고 고백했다. 자신만의 요트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 그가 첫 직업으로 자동차 디자이너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포르츠하임 대학교(Pforzheim University)에서 운송 디자인 학위 프로그램을 막 시작했을 무렵 디자인 대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상금이 무려 2만5000마르크였다. 리히테는 “우선 교내 선발 과정에서 우승해 포르츠하임을 대표하는 자격을 얻어야 캘리포니아, 스위스, 런던 디자인 스쿨과 경쟁할 수 있다. 2만5000마르크라는 큰돈을 한 방에 벌기 위해 시도한 것이 엄청난 기회를 선물해주었다”고 말했다. 그가 그 돈을 원한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요트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는 1년 내내 작업실에 웅크리고 앉아 디자인 콘셉트를 잡고 모델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결국 우승을 거둔 후 그 상금으로 선체 길이가 7m나 되는 첫 번째 요트를 샀다. 당시 그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그의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구성된 대회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회사에 입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대회가 내 미래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후 리히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남은 학업을 마무리했다. 회사에서 채택되지 않은 프로토타입 그림을 자동차 잡지에 판매한 것이다. 당시 하루 반나절 정도 걸려 완성한 그림 한 장당 3500~4000마르크 정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트 위에서 종이에 빠르게 자동차 형태를 잡으며 스케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보다 빨리 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잡담은 뒤로하고, 이제 닻을 올릴 시간이다. 마르크 리히테가 선실로 사라지더니 비바람을 막아줄 세일링 장비를 착용하고 금세 다시 나타났다. 풍속 감지기가 22~27kn를 가리킨다. 보퍼트 풍력계급(Beaufort scale)상으로는 6이다. 서풍이 불자 뭉게구름이 발트해의 파란 하늘에 흐르듯 지나간다. 세일링하기엔 완벽한 날이다. 킬 베이(Kiel bay)에 위치한 이 작은 항구는 전략적 관점에서 이상적인 입지 조건을 갖췄다. 바람이 낮게 불 땐 공해(open sea,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바다)까지 항해해야 할 것 같고, 오늘처럼 산들바람이 불면 이 아름다운 킬 피오르(Kiel fjord)는 완벽한 놀이터가 된다. 리히테는 돛을 준비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바우스러스터를 켠 후 첫 번째 펜더를 위로 올렸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물 흐르듯 정교하다. 그는 항구의 좁은 코너에서 기술적으로 빠져나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요트를 향하게 한 후 돛을 올린다. 오늘의 부드러운 항해를 위해서는 제노아(genoa, 요트의 큰 돛에 포개는 삼각돛)만 있으면 되지만, 리히테는 메인 돛까지 올렸다. 모두 합쳐 100㎡의 돛이 팽팽하게 펼쳐졌다. 이런 미풍에는 다소 과한 감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요트 위에 손님들이 있으니 스포티한 경험을 안겨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는 XP-38 요트가 경쾌하게 기울어질 때까지 계속 돛을 팽팽하게 유지했다. 요트가 바람을 받지 않는 부분엔 물보라가 일고, 쇠줄은 바람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그렇게 우리는 항해를 나섰다. 정말 놀라운 것은 리히테가 요트 위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육지에서는 에너지 넘치던 그가 바다에서는 배를 움직이는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돛을 위한 최적의 포지션을 찾으며 미세하게 움직였다. 요트가 이상적 코스로 계속 갈 수 있도록 돌풍이 오는지도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동료 선원에게 매우 명확하고 간결한 지시 사항만 전달하며 단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제노아 다음에 아딧줄(풍향에 따라 돛의 각도를 조절하는 밧줄)을 당겨라. 무게중심 전환을 위해 이동해라.”
요트를 조종하는 마르크 리히테를 보면서 긴 하루 동안 도심의 교통에 시달리다 겨우 편히 쉬며 배터리를 충전하는 전기차가 떠올랐다. 물 위에서 그는 온전히 궁극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듯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지구상 어디든 기분 내키는 대로 요트를 타고 갈 것 같은 모습. 실제로 이 요트로는 가능한 일이다. 그런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까. 다시 항구로 돌아와 항해 후 즐기는 맥주를 마시면서 마르크 리히테는 “나는 언제나 에너제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다. 내가 보고 먹는 것, 얘기를 나누는 사람, 가는 모든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나의 창의성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을 비우는 일이다. 이 요트에선 그게 가능하다. 바람만 불 뿐, 아주 조용하다. 내 평소 일상과는 완전히 반대다”라고 말했다. 그에겐 이곳이 집만큼 편안한 장소인 것이다. 요트 앞부분에 새긴 ‘Heima’라는 단어도 아이슬란드어로 ‘집’을 뜻한다.

 

COPY : Bernd Zerelles PHOTO : Rouven Stei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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